📜 사랑하는 자녀를 내세우려는 하나님의 수고 | 1959년 10월 11일(日), 전 본부교회
사랑하는 자식이 죽음의 자리에서 허덕이고 있다할진대 부모는 그 자식을 구하기 위하여 고통과 두려움을 개의치 않으며, 죽음도 어떤 행동도 개의치 않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일망정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정도밖에 안 될 것인가? 어떠한 역경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고, 희생을 개의치 않고 갈 수있는 것이 사랑이라 할진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하겠습니까?
📜 절대신앙과 조국광복 | 2000년 6월 4일(日), 이스트 가든
그러니 성인의 고통, 충신의 고통, 효자의 고통이 아니에요. 성자의 고통까지, 하나님의 고통을 중심삼고 성자의 고통도 개척해 나오는 거라구요. 그러니까 성자의 가는 길을 돕기 위한 하나님이 선생님을 그렇게 밀고 나왔어요. 예수님도 그걸 몰랐어요. 하나님이 전부 다 짝패 만들 줄 알았다구요. 길러서 자기 상대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짝패를 하나님이 만들 수 있어요? 내가 찾아 가지고 길러서 짝패를 만들었어요. 그게 어머니예요, 어머니. 길러 왔어요. 난다긴다하는 여자들이 어머니를 우습게 알았지요.
📜 야곱노정과 우리의 신앙생활 | 1973년 5월 27일(日), 벨베디아 수련소
야곱노정에 있어서 라반을 대하던 시대는 육적 고통 시대이고, 그다음에하란에서 고향을 찾아가 에서하고 싸울 때까지는 마음적 고통 시대다 이거예요. 그 과정을 거치는 거라구요. 그렇게 나누어진다구요. 다시 말하면 라반 집에서는 육적 고통 시대이고, 하란에서 집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음적고통 시대입니다. 천사하고 싸우고 그저 걱정을 하고, 그런 마음적 고통시대다 이거예요. 그 과정을 거쳐야 된다구요. 둘 다 죽을 각오를, 육도 죽을각오를 하고 마음도 죽을 각오를 해야 돼요.
📜 우리들의 각오 | 1960년 11월 6일(日), 전 본부교회
이 땅에 와서 고생한 자신의 생애가 문제가 아니라 민족 전체를 책임지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슬픔과 하나님의 고통과 하나님의 억울함을 해원해야 할 자신임을 아신 예수님은 자기의 괴로움이나 피 흘리는 고통보다도역사노정에서 불쌍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나오시기에 자신이 죽는 것의 몇 배가 되는 고생을 하신 하나님인 것을 아셨기에 입을 벌려 저주할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서 그랬다구요? 아닙니다. 알고 보니그런 심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 효과적인 전도 방법 | 1972년 1월 3일(月), 워싱턴
그는 슬픔의 그 순간, 기쁨의 그 순간, 그리고 고통의 그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은 그 사람이 알고 지내던 과거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큰 감동을 그에게 주게 되어 여러분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은 그에게 그의 친구가 줄 수 있는 도움보다도 더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가 기뻐할 때에는 그에 어울릴 수 있는 무엇인가를 말해 주고, 고통을 당하게 되면 그고통을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전도를 할 때에는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 한 많은 아버지를 모실 이 | 1959년 5월 24일(日), 전 본부교회
흑암의 세계에서, 사탄 주관 하에서 신음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고통 가운데 있는 세계인류를 대신하여 그들의 모든 짐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내적으로는 슬픔의심정을 책임지고 외적으로는 고통의 짐을 책임져 이것을 사탄 앞에 해결지어야 할, 그리하여 하늘 앞에 승리의 발판을 세워야 할 슬픔과 고통의 왕자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 가야 할 나 | 1963년 5월 15일(水), 전 본부교회
그 고개를 넘으면서 당하는 고통보다도 하늘의 책임을 진 자로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내적인 싸움의 고통이 더 커야 합니다. 동기가 커야 결과도 크지요. 온천지의 사명을 내가 홀로 책임졌으니 이것을 어떻게든 죽기 전에 감당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나가야 합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몇천만 번 맹세를 하고자기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우치면서 눈물 흘리고 뒤넘이치는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 내적인 고통이 세계적인 골고다 산정에서 당하는 고통보다 커야만 큰 역사를 책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열이면 열 다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 아버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 1956년 2월 28일(日), 전 본부교회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죽음의 울타리에서 허덕이는 자식을 바라볼 때너희들 잘하는구나. 하는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에 사무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슬픈 자리에 계셨으며, 고통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고통스런 입장에 계셨던 아버지셨습니다. 또한 죽음으로 사라지는 그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은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길을 가다 허리가 굽은 불쌍한 노인을 보게 되면내 아버지도 저런 모양으로 찾아오셨겠구나. 하는생각을 해야 됩니다.
📜 예수님의 한 | 1968년 1월 15일(월), 전 본부교회
심한 고통을 가하여서 이 민족의 고통을 제하고 미래에 서러운 고난을통하여서 하늘의 서러움을 감하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사람은 사탄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의 배반 속에서 나오셨지만 하늘 가정을 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세계는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하나님 가정의 식구가 됨을동경하고 그 식구와 인연맺는 것을 존중하면서 나를 잃어버릴 수 있는 일원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를 흠모해야겠습니다.
📜 심정만이 하늘과 동반할 수 있다 | 1962년 3월 23일(金), 전 본부교회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고통과 불행은 커지는데,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불행이 탕감됩니다. 그냥은 안 됩니다. 과거와 현실을 두고 볼 때 앞으로도 불행의 요소와 대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긋지긋한 불행과 고통을 느끼는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불행이 크면클수록, 즉 그 불행이 세계적이거나 천주적일수록 복된 시기가 빨리 돌아옵니다. 현실의 복잡한 것들이 모두 지나가야 이상세계가 이루어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굶주리고 있고, 또는 억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