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 | 1956년 12월 2일(日), 전 본부교회
그러면 예수의 생애는 무엇을 바탕으로 한 생애였는가? 4천년 역사를총결산하는 생애였으며, 그때까지 하늘의 원한에 사무쳤던 모험적인 노정을 종결하는 생애였으며, 새로운 승리의 터전을 이루기 위한 지상에 없는초현실적인 승리의 생애였습니다.
📜 사랑을 이한 한(恨) | 1970년 10월 4일(日)새벽, 전 본부교회
마음은 생애를 조절하여 나오는 것이요, 몸은 생활을 조절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생활과 생애는 다른 것입니다. 생애는 일생을 두고 말하는 것이고, 생활은 하루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 자체가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마음이 생애를 주관하고, 몸이 생활을 주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먹지 않으면 몸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은‘먹긴 먹되 생애에 어긋나는 자리에서 먹어서는 안 된다. ’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어느 것이 더 커요?
📜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 1970년 9월 27일(日), 전 본부교회(청파동 1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생애를 두고 볼 때, 혹자는 60세에 가까운 사람도 있을것이요, 혹은 40세가 넘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혹은 아주 젊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여러분 자신은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입니까? 여러분은 이 민족의 갈 길을 염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고, 자신들이 해야할 사명을 스스로 느껴야 되겠습니다.
📜 해방․ 석방시대와 평화세계 실현 | 2004년 4월 30일(金), 한남국제연수원
오늘날 우리 민요에 있는 그런 노랫가락과 같은 길을 세계 앞에 만들어 놓고 죽어 보자 하는 것이 레버런문의 생애입니다. 』 이제 무슨 말을 했어요? 무슨 생애라고 했어? 사길자! 아, 물어보잖아? 못 들었나, 들었나?「양친부모의 생애입니다. 」그거 다시 한 번 읽어 주라구. 『레버런 문의 생애입니다. 』레버런 문의 생애인데, 다른 얘기를 하고 있어. 그것을 다 못 들었지? 그놈의 손가락을 만져 가지고왜 야단이야? (웃음)「죄송합니다. 」그때에 사탄이 들어와 가지고 목을 매면 어떻게 되겠나? 걸렸지? 긴장한 시간이에요.
📜 평화세계로 가는 길 | 2001년 9월 19일(水), 이스트 가든
「예. 」 선생님의 생애가 문제가 돼요.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인류가 인생문제, 종교문제, 정치․경제․문화문제를 중심삼고 자기들의 엮어진 모든 나라 나라를 중심삼고 환경을 따라 가지고 자기를 자랑해나왔지만, 그 모든 전부는 지나가고 말아요. 그 지나갈 수 있는 역사적인 모든 것을 지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워 나온 것이 선생님의 생애노정이다 하는 것을 재삼 명심해야 되겠어요.
📜 우리의 책임 | 1970년 8월 29일(土), 중앙수련소(수택리)
내 개체는 역사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생활을 통하여, 생애를 통하여 그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생애는 일생의 노정이요, 생활은 하루의 노정입니다. 그 생애에 대한 철두철미한 사상과, 생활적인 면에서 철두철미한 친화력을 가지고 그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돌파해 나가느냐 하는 문제가 자기 생애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탕감법과 회개 | 1999년 1월 10일(日), 세계평화이상가정교육본부(브라질 자르딘)
(≪참부모님 생애노정 4권≫제1절 ‘1960―생애중 최대의 실적을 남기는 해가 되게 하자’부터 훈독)
📜 나는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 1970년 9월 27일(日), 전 본부교회(청파동 1가)
저희들이 어떠한 생애를 남길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남겨지는생애가 자기의 현실보다 수하에 있는 것으로서 남겨질 것이 아니라 더 큰무대를 통하여 자기 스스로 거기에 흡수되는 자리에서,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가는 자리에서 값진 생애가 남아진다는 것을 알고, 오늘날 이들이 뜻있는 천국 창건의 용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런 관점에서 저희들이 과거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비판 분석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현재의 입장을 비판 분석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 개척자의 사명 | 1970년 7월 19일(日), 전 본부교회
그러면 생애란 무엇입니까? 생애라는 것은 일생을 중심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생활을바칠 것입니까, 생애를 바칠 것입니까? 나는 하나님 앞에 생애를 바치겠나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하루의 생활을 가려 가야 합니다. 하루 하루의 생활을 가릴 줄 몰라 가지고는 일생을 승리적인생애로 남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의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알겠습니까?
📜 절대가치관과 참사랑의 신비 | 2004년 8월 15일(日), 한남국제연수원
생활이란 하루 하루 사는 것을 말하고, 생애는 일생의 삶, 일생을 두고 사는것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영생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일생이 아니요, 영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생애노정을 어떻게 영생에 어떻게 연결시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걸 해야 하는 것이 생애의 책임입니다. 또 일생이라는 것은 하루하루의 생활을 연결시켜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이라는 것은 나날들이 연결된 것입니다. 생애의 가치적인 내용이 어디에서 결정되느냐? 생애를 다 살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