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이 남겨야 할 전통 | 2002년 2월 22일(金), 한남국제연수원
박보희, 생각나?「예. 」그것짓는다고 내가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몰라요. 유효원으로부터 그렇고, 그 3형제가 선생님을 찬양하지 않았어요. 박보희를 왜 도와주느냐 이거예요. 그때 설계를 해 가지고 링컨센터처럼 하려고 얼마나 간절했어? 그거생각나?「예. 」그거 집어치우고 엄 선생한테 설계시키라고 할 때 엄선생 알기를 설계세계의 폐지같이 생각했지. 엄 선생을 시켜 가지고한 거예요. 지을 때 통벽으로 지었어요. 천년 이상 되어 집이 다 날아가더라도 벽은 남아요. 그거 알아요?
📜 사탄세계의 최고의 천적, 참사랑과 통일원리 | 2004년 10월 16일(土), 이스트 가든
이 일을 박보희한테 시켰는데, 서명 날인을 했으면,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는데 사인 받아 왔더라면 부시가 저렇게 안 됐을 거예요. 부시대통령을 내가 후원하지 않으면 못 하게 돼 있어요. 손대기 시작하기전에 14퍼센트 진 거예요. 14퍼센트 밀어 가지고 34퍼센트를 이겨 가지고 대통령이 됐다구요. 그거 누가? 통일교회 때문이에요. 그걸 부시가 알아요. 박보희가 내가 전달했던 얘기, 공산당 방어, 기성교회 쇠망 방어, 가정문제 해결하는 것을…. 가정문제만 해결하게 된다면 교회도 살아나고 공산당도 막아 치운다는 거예요.
📜 성약시대의 섭리와 가정맹세 | 1994년 12월 22일(木), 이스트 가든
지금까지 선생님이 해 나온종합적인 모든 것에 대해서 박보희, 워싱턴 타임스, 브리지포드 대학보고하라구요. 보고를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간략하게 해요.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오늘 낮에 내 할 일 많다구. (박보희 총재의 보고, 주동문 워싱턴 타임스 사장보고, 진경희 브리지포트 총장 보고)
📜 참사랑과 참부모가 가는 길 | 2004년 3월 27일(土), 이스트 가든
박보희한테 맡기게 된다면 말이에요, 박보희 예산의 절반도 안 돼요. 그래 가지고 나머지, 얼마 남았다는 결과까지 보고해요. 대회 하면 그렇게 많은 대회를 해도 전부다 영(0)으로 맞춰요. ‘얼마 얼마 모자라고, 얼마 이렇습니다. ’ 이렇게할 줄 몰라요, 전부 다 공적으로 맞게끔. 황선조는 전부 다 맞게 하나? 나 그거 안 믿어요. 미국에서 내가 경제 분야를 자기들에게 맡겨서 할 때는 돈이 밑지지만, 내가 관리해 가지고 경리 책임자를 세워서 하면 28퍼센트에서 32퍼센트, 평균 30퍼센트를 절약할 수 있어요.
📜 3월 새 출발을 위한 행보 | 2004년 2월 29일(日), 한남국제연수원
선생님이 박보희를 믿고 산 사람이 아니라구. 누구를 믿어? 자기의 부모도 못 믿어요. 자기조상도 내가 고향을 떠날 때 할아버지로부터 어머니 아버지가 절대 고향을 떠나지 말라고 했지만, 그분들을 믿어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걸 박차고 나올 때 소돔과 고모라와 마찬가지예요. 의인 다섯 사람이 있어도 멸망을 안 시키겠다고 하는데, 선생님의 어머니 아버지다섯 사람만 되겠어요, 동네가?
📜 책임자가 갖춰야 할 것 | 2002년 7월 23일(火), 이스트 가든
박보희 하나 하게 되면박 씨들을 내가 살려 주려고 하는데 그것이 꺾여 나가요. 박보희를 지금까지 보면 자기 처신의 한계선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어요. 박상권도그렇지. 자기들이 하는 대로 선생님이 한다고 사인할 것 같아? 내 말을 알겠나? 박 씨들이 그런 공이 있다구요. 박중현도 그래. 마찬가지라구. 뭘 하면 선생님이 하라고 한 것처럼하는 거예요. 언제 그런 얘기를 했다고 그래 가지고 말이에요. 요즘에는 왜 안 나타나?「스위스, 국가 메시아 책임진 나라에 갔습니다. 」가면 누구한테 얘기를 해야 될 것 아니야?
📜 절대신앙의 길을 가라 | 2002년 7월 24일(水), 이스트 가든
효율이, 박보희가 지금 어디에 있어?「전혀 연락을 못 했습니다. 」박보희도 그래요. 통일교회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북에 가서 박상권이 곤란한 것이 그거 아니에요? 자기가 하지 않을 얘기를 해서, 자기가 도와준다고 해 가지고 말이에요. 세상에! 자기들이 그런 데 가려면 말도 선생님에게 의논하고 해야 돼요. 자기 정도를 넘으면 안 돼요. 박상권이 그래요. 내가 정성들인 것이 절반 깎아져 나갔어요. 그렇게 하다가는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추락해 버려요. 박구배도 그래요.
📜 제12회 애승일 말씀 | 1995년 1월 2일(月), 한남동 공관
김일성을 만나서도 했고 남한에대해서도 지금까지 박보희를 통해서, 이번에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누구도 안 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박보희가 외로운 자리에서 김일성의 조문을 갔다 온 것입니다. 조문 가서 문제가 된 것입니다.
📜 천일국 완성과 축복가정의 사명 | 2004년 2월 15일(日), 여수 청해가든
박보희가 못 하면 내가 나서고, 곽정환이 못 하면 내가 나서는 거예요. 황엽주도 여성동맹의 120명까지 불러다가 교육한 것, 그 간나들이 지금 자기를 따라오나? 황엽주!「예. 」거기에 황 씨 책임자도 있었지?「예. 」그게 여성 대표 아니야?「예. 」6억이 되는 여성동맹의 책임자가 와 가지고 이랬는데 말이야. 아이구, 지난날의 것을 말해야 여러분에게 욕바가지밖에 뒤집어씌울것이 없어요. 몽둥이로 후려갈겨야 돼요. 듣고 잊어버려야 할 것을 기억하고, 기억해서는 안 되는 것을 기억해서 말해서는 안 될 것인데 말한 거예요.
📜 일족을 수습해 나라를 찾자 | 2001년 10월 2일(火), 한남국제연수원
「박종규입니다. 」박보희가 찾아가서 만나 가지고 형제와 같이 지내라고 하니까 그러겠다고해놓고…. 박보희가 배짱이 없었어요. 비위가 있어야 돼요. 형님의 자리에 있으면 그를 위해 주고 이래 가지고 보고해야 되는 거예요. 미국에 있으면서 보고해 줘야 되는데, 보고 거리를 바라고 있으니모든 것을 하라고 했는데 못 했어요. 어떻게 틀어져 가지고 내가 박씨를 살려 주기 위한 놀음을 하고 있어요, 박 씨, 박 씨! 박가가 문제지요? 박준규가 김대중 정부에서 국회의장을 했지요?「예. 」그 다음에박주선은 비서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