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쌍하셨던 예수님 | 1964년 5월 3일(日), 전 본부교회
구원을 하기 위해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 대한 모든 고통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입장에서는 이 세상을 수습할 수 없는 연고로, 타락한 세상에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인간만의 고통으로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고통권 내에 들어가 책임을 지고 대응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 슬프고 비참한 역사적인 대응의 노정 위에 하나님께서 직접 참여하지 않고서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기에 인류의 슬픈 역사에 동반하여 지금까지 싸워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땅을 구하는 데는 어떠한 기준에서 구할 것이냐?
📜 복귀의 완성을 위한 심정을 찾아서 | 1998년 1월 1일(木) 0시, 푼타 델 에스테(우루과이)
완제품을 바라고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중간에 타락함으로말미암아 고장났기 때문에 다시 블루 프린트를 통해서 재창조하는 과정을 거쳐 가지고, 새로이 만드는 과정을 거쳐서 완전한 심정의 세계, 사랑이상 세계를 다시 찾자 하는 입장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은 잃어버린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한 수난 길과 고통의 길을 걸어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그 하나님이 누구냐 하면 사랑의 주체입니다.
📜 찾아오시는 아버지 | 1960년 5월 22일(日), 전 본부교회
또 내 주위에 엉클어져 있는 흑암의 모든 고통을 헤쳐 놓을 수 있는방법을 알아야 됩니다. 그 목적지를 찾지 못했고, 그 어둠과 흑암의 탄식을 제거시키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수천년 역사를 거쳐 나오는 동안 인류는 탄식과 절망과 고통 속에서 허덕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인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면고통, 슬픔이면 슬픔, 흑암 권세면 흑암 권세의 한계가 어디까지일 것이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죽음의 고비까지입니다, 죽음의 고비까지.
📜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 | 1960년 10월 16일(日), 전 본부교회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 이런 복잡한 과정에서도 끝까지 참으면서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 어떠한 위험과 공포가 휘몰아친다 할지라도 넘어갈 수 있고 죽음의 고개까지도 넘어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할진대 하늘은 반드시 그 무리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 | 1959년 8월 30일(日), 전 본부교회
하나님, 제가 지옥에 가서 아버지의 고통을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을 갖고 기도하는 자는 지옥 가지 않습니다. 오, 하나님, 지옥이 싫사오니 천당만 보내 주시옵소서. 하는자는 지옥 갑니다. 지옥 가요.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아바 아버지여, 내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마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 주는 나의 선한 목자 | 1957년 3월 17일(日), 전 본부교회
또 예수님은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셨기 때문에 나그네 된 사정을 말씀하신 것이고,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옥에갇히신 사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재림주님이 끝날에 이러한 사정을 당하실 것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생애노정이야말로 어느 누구도 동정하지 않는 가운데서 다른 사람은 상상조차할 수 없는 서러움과 슬픔과 고통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은 나면서부터 이렇게 고통스런 생활을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 | 1959년 10월 25일(日), 전 본부교회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부모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 몸의 안식처, 몸의 복지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몸은 땅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몸이 안식하고 살 수 있는 복지를 향하여 가고자 한다면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니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고개를 넘고 나면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임신한 부인들이 해산의기한이 가까워질수록 고통이 점점 더해갑니다만 그 고통을 넘고 나면 그고통에 반(伴)하는 기쁨이 있듯이 그러한 고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 부활절 기념예배 말씀 | 1960년 4월 17일(日), 서울 삼청공원 뒷산 중턱
타락세계에서 하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남기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넘어 예수와 더불어 자유롭게 사랑의 심정을 노래하는 세계가땅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지상에서 부활의 성업을 승리적으로 종결짓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의 심정을 계승하여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행복과 희망과 자유와 이상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심정을 통과해야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까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신앙해 나왔습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생각해 나왔습니다.
📜 보여 줄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자가 되자 | 1962년 1월 3일(水), 전 본부교회
피조만물세계에 하나님의 고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모르고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랑을 해 보지 못하셨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하나님의 심정이 여지없이 유린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붙든 사람이 있었느냐? 민족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반대하고 깎아내리는 사람은 있었어도 책임을 다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더구나 책임을 다하라고 밀어 준 사람은 더욱 없었습니다. 책임을 해 보려 한사람마저 꺾여 넘어갈 때마다 하나님은 분한 마음에 당장 심판해 버리고싶었으나 매번 참으셨습니다.
📜 하나님의 대신자 상속자 | 2003년 10월 14일(火), 중앙수련원
내 가정의 슬픔, 속에 있는 슬픔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내적 중심 자리에 서서 고통을 겪는, 눈물을 흘리고 피땀을 흘리고 사랑에 대한 고통을 겪고, 탕감을 하고, 생명에 대한 한을 품고, 가정에 대한 통곡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던 모든 전부가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은 동서남북을 대하고 360도를 대했으면 360명의 마음 전부를대신한 이상의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으면 체면을 세울 수 없다는 이런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지상의 눈물 세계의 복을, 눈물 때문에 찾고 있는 그 복을 가질 수 있는 주인이요, 또 피눈물을 흘릴 수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