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많은 아버지를 모실 이 | 1959년 5월 24일(日), 전 본부교회
예수는 십자가 도상에서역사적인 서러움과 인류의 서러움, 역사적인 고통과 인류의 고통을 붙들고만민 앞에 하늘의 기쁨의 도화선이 되고자 하는 심정에 미친 자였습니다. 그러한 심정에 미친 자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만민을 구할 수 있는구주가 되었고, 슬픈 천상의 역사노정에 뚜렷이 드러나는 주인공이 되었던것입니다. 또 하늘이 걸어온 고통의 역사에 자랑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되었고, 슬픈 역사노정 위에, 고통의 역사노정 위에 미래의 신앙역사에 나설수 있는 왕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우리들이 해야 할 일 | 1962년 4월 13일(金), 전 본부교회
종 중에도 가장 고통스러운 종의 자리, 양자 중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양자의 자리를 거쳐야 합니다. 가장 불쌍한 종의 자리보다 가장 불쌍한 양자의 자리를 거쳐야 더 많은 복을 받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사는 사람보다 고생을 많이 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제일 높은 기준은 제일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고생하는자리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 분야에 있어서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고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됩니다.
📜 한 많은 아버지를 모실 이 | 1959년 5월 24일(日), 전 본부교회
그 사랑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천적인 고통을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이에요. 인류는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 사랑의 주체가 되신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당하고 계시는 피흘리는 곡절의 심정은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끝날에 처한 우리 성도들이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뇨? 사랑의하나님을 안 이상 그 하나님의 심정에 스며드는 천적인 슬픔을 알아야 되겠고, 그 하나님의 심정에 스며드는 천적인 고통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 세상 슬픔을 몰아내자 | 1974년 7월 29일(月), 미국
하루 밥 안 먹는 그 이상의 고통을 느끼면서, 혹은 일주일 밥 안 먹는 그 이상의 고통을 느끼면서 슬퍼해 봤느냐구요? 생사의 경지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명을 걸어 놓고 고통을 느끼면서 슬퍼해 봤느냐 이겁니다. 「아니요. 」그러니까 슬픈 사람의 사정을 모릅니다. 슬픈 사람의 사정을알 수 없는 거라구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 골짝 길이라면 슬픔의 골짝 길입니다. 그 골짝 길이 어떻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 됩니다.
📜 승리적 주관자가 되라 | 1965년 1월 1일(金), 전 본부교회
그러나 그는 슬퍼도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승리를세워야 할 책임자요, 죽음 길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세워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가는 자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개인적인 슬픔과 고통만이 아니라 국가적인 슬픔과 고통을 짊어져도, 세계적인 슬픔과 고통을 짊어져도 달게 받아야 됩니다. 만민을 위하여 죽음의 길을 가라 해도 달게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길을가서 이 땅 위에서 승리의 주관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 주는 나의 선한 목자 | 1957년 3월 17일(日), 전 본부교회
외로움과 고통이 있습니까? 혹시 여러분은 구속을 당하고 있습니까? 우주적인 주인공 되시는주께서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이런 슬픔과 외로움, 또는 고통을 당하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나 한 사람의 작은 슬픔일지라도 또는 고통일지라도 그것이 나 한자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까지 미쳐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 | 1960년 10월 16일(日), 전 본부교회
그들이 서러워할 때 우리도 서러워하고, 그들이 고통을 받을 때 우리도 고통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갈 길입니다. 이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고, 이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이 길뿐입니다. 이것이 내 일이다, 나라에 슬픔이 있으면 그것이 내 슬픔이라고 할 수 있고만민이여! 너희의 슬픔을 하나님께 고하지 말고 우리에게 고하라. 고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우리들에게 슬픔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슬픔을 아는 우리는 그것을 한하지 맙시다.
📜 승리적 주관자가 되라 | 1965년 1월 1일(金), 전 본부교회
그리하여 민족적인죽음의 고개와 민족적인 고통의 고개와 민족적인 슬픔의 고개를 넘고, 세계적인 죽음의 환난과 세계적인 고통의 환난, 세계적인 슬픔의 환난을 당해 보아야만 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늘땅이 슬퍼하고 하늘땅이 생사의기로에서 몸부림칠 때, 이것을 해결지어 가지고 승리의 일로를 개척해야하는 것이 복귀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민족적이고 세계적인 하늘땅의 죽음의 길, 슬픔의 길, 고통의길에서 뒤넘이치다가 한 면, 즉 영적인 면만 해결했습니다.
📜 답답하고 민망하신 예수 | 1960년 7월 3일(日), 전 본부교회
이와 같은 책임을 지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불행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시는 분이고, 어느 누구보다도 더 고통과 슬픔을 뼈저리게 당하시는 분이며 그 사정을 벗어나지못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도의 길을 찾아 나오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나온 사람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고통이 있을 적마다하나님, 이 고통을 받으시옵소서. 라고 호소했습니다. 슬픔이 있을 적마다 하늘 앞에이 슬픔을 당신이 맡아주관하시고 나를 평안한 자리로 옮겨 주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 모시고 싶은 아버지 | 1961년 2월 12일(日), 전 본부교회
여러분들은 수천년 동안을 하루같이 참아 나오신 그 아버지를 모셔야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 일신의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조차 버려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절대로 자기를 중심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내게 이런 것은 피하게 해 주십시오. 이따위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이 당신의 뜻 앞에 합당한 고통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이런 처지에 놓여지게 됨은 모두가 아버지의 뜻이 있어서요, 또 뜻의 성취를 위해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