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날에 남아질 아버지의 참아들딸 | 1959년 7월 26일(日), 전 본부교회
우리의 것이 있다면 고통과 슬픔뿐입니다. 그 고통과 슬픔을 생명의 요소로 소화시킬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하나님이오냐, 내 아들아 내 딸아. 하고 끌어주어도 바라보기에 민망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여러분들이 된다 할진대 심판의 한 날, 슬픈 역사와 고통의 역사 앞에 선언하는 그날에 여러분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못 들망정 하늘의 손길은 여러분 앞에 머물 것입니다.
📜 이렇듯 예수는 우리를 찾으신다 | 1956년 5월 20일(日), 전 본부교회
의붓아버지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동생들에게까지도 비난받는 자리에서 예수는 할 말이 많아도 다 하지 못하는 고통의 생활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고통은 예수 일신을 위한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내가 아니면 잃었던 가정을 다시 찾을 자가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일구월심 하늘을 대한 마음만으로 간절했던 것입니다.
📜 기쁨과 영광의 세계를 살아서 싸워 이루라 | 1962년 7월 15일(日) 밤, 전 본부교회
먼저는 기도하시는 예수를 고통 가운데에서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예수가기도로써 싸워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도 예수도 성신도 끝날이 어서 오기를 간구하고 계십니다. 십자가를 청산하고 기쁨과 영광의 날을 맞기 위해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축복의 최대의 소망은 무엇이냐 | 1960년 4월 24일(日), 전 본부교회
원수들에게 당하는 손의 고통, 원수들에게 당하는발의 고통, 원수들에게 당하는 옆구리의 고통을 예수님은 당연하게 받으셨습니다. 역사는 이러한 예수님과 같은 무리를 통하여 수습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 끝날에 남아질 아버지의 참아들딸 | 1959년 7월 26일(日), 전 본부교회
영광이 오기 전에 고통의 세계를 가야 했고 슬픔의 길을 걸어야 했던 예수였습니다. 왜 그런가? 4천년 역사를 탕감해야 할 예수였기 때문입니다. 만왕의 왕이 되려면 먼저 슬픔의 왕자로 합격해야 되고 고통의 왕자로 합격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상의 슬픔을 통하여 거쳐 간 수많은 영인들을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30여 년의 생애에서 3년 공생애노정을 거쳐 가신 예수의 행로는 슬픈 행로였습니다.
📜 수난의 정상 | 1977년 6월 26일(日), 미국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로 말미암아, 대상으로 말미암아, 그다음엔 부모의자리에서 천금 같은 고통을 받았으면 그 고통을 벗어 주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을 찾아 줘야 되는 거예요. 그 이상의 것을 찾아 주기 전에는, 그이상의 것을 회복하기 전에는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 인간을 보게 된다면, 인간세상을 보게 된다면, 뭐 남편 죽고 다 파탄되어도 그건 시일이 가면 잊어버릴 수 있다구요. 그런데 영적인 하나님은 어떨 것이냐? 영적인 하나님 앞에 일년이라는 관념이 있어요? 일년이니하루니 하는 시간 관념이 있느냐 이거예요.
📜 천국을 차지하는 백성이 되자 | 1957년 6월 2일(日), 전 본부교회
이제 우리는 그러한 분을 만나 하나님을 부모로 모셔놓고 하나님의 서러움을 우리의서러움으로, 아버님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아버님의 억울함을 우리의억울함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을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이 하나님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무치게 호소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 부자관계가 맺어지지 않았고, 천륜적인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았기때문입니다.
📜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 1958년 12월 21일(日), 전 본부교회
이러한 노정을 거쳐오면서도 하나님은 나 하나를 찾기 위하여, 6천년 전에덴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잃어버리고 흘리셨던 그 슬픔의 눈물, 고통의심정을 잃어버리지 않으신 채 싸워 나오셨습니다. 6천년을 하루같이 잃어버린 그때의 심정으로 인간을 찾아 싸워 나오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이 6천년 전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역사로 남아졌고 우리에게는 슬픔의 열매가 생겼습니다.
📜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 1958년 12월 21일(日), 전 본부교회
내 몸을 붙들고 울 것이 아니요, 내 한 자신의 고통 때문에 울 것이 아닙니다. 나를 구하기 위하여 내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지니신 하나님의 고통을 알아야 합니다. 내 슬픔보다 더 큰 하나님의 슬픔이 있는 것을 알고 내 몸의 어려움보다더 큰 하나님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일체를 부정하고, 배후에서 역사를 움직여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에 사무쳐 있는 모든 고통을 해원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몸을 찾아 헤매야 할 운명이 있는 것이 오늘날 인류인 것입니다.
📜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 1964년 1월 1일(水) 오전 1시, 전 본부교회
그러나 그런 기준을 닦지 못했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걸어간 비참하고, 슬프고, 고통스러운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여러분은 인내력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나는 형무소에서 쇠고랑을 차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들이 뜻을 대하여 저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가면 얼마나 복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까? 또한 그런 사람을 보고 내가 뜻을 위하여 저렇게 비참하고 저렇게고통을 당해도 괜찮다. 하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