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감옥 탈출기

흥남 감옥 탈출기

1950년, 억울하게 옥에 갇힌 젊은 선생과 제자들이 흥남 감옥에서 살아 나오기까지의 이야기.

목차 (19)
  1. 프롤로그
  2. 끌려가는 죄수들
  3. 지옥의 죄수생활
  4. 흥남 공장
  5. 배고픔과 죽음
  6. 젊은 청년
  7. 선생 596번
  8. 죄수들의 선생
  9. 꿈에 본 할아버지
  10. 정성을 드리는 선생
  11. 제자의 불신
  12. 성경의 비밀
  13. 계속되는 불신
  14. 돌아온 제자
  15. 선생을 찾은 여인
  16. 전쟁의 시작
  17. 죄수들의 죽음
  18. 삶과 죽음
  19. 탈출

01프롤로그

'프리즌 브레이크'라는 미국의 인기 드라마가 있었다. 주인공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형을 탈출시키기 위해 온갖 역경을 딛고 성공시키는 이야기다.

흥남 감옥 탈출은 1950년에 일어난 한국판 ‘프리즌 브레이크’였다.

그것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메시아를 탈출시키기 위해 하늘이 벌였던 역사적 사건이었다. 죽음과도 같았던 흥남 감옥 생활을 견뎌내고 마침내 탈출에 성공했던 이 사건은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감동적이다.

02끌려가는 죄수들

끌려가는 죄수들

1949년 2월,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눈이 내린 길 위로 화물 트럭 하나가 천천히 기어가듯이 가고 있었다. 트럭의 화물칸에 실려서 가는 것은 화물이 아니고 수십 명의 거지 떼 같은 남정네들이었다. 이 비참한 몰골들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표정으로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밧줄로 팔이 묶여있었고 그것도 2인 1조로 옆 사람과도 묶여서 누구도 도망가려야 갈 수도 없게 해 놓은 상태였다.

한참 동안을 웅크리고 앉아서 가노라니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야 이 간나 새끼야! 다리 좀 오므리라우!"

"쌍, 나도 힘들어 죽갔어!"

바로 그때, 어디선가 곤봉이 날아들어서 그들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조용히 못 하갔어? 여기가 너네 안방인줄 아네?"

감시병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다시 몸을 웅크리고는 서로의 눈만 흘겼다.

피곤한 이들의 여정과는 달리 무심한 차는 기어가다 서다 하기를 반복하면서 밤새 달렸다. 그렇게 밤새 달리던 차는 새벽이 되어서야 마침내 어딘가에 멈춰 섰다.

철조망으로 엮어진 문 앞에 서 있던 경비원이 운전수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문을 열어줬다. 차가 문을 지나 넓은 운동장 가운데 섰다.

"날래 내리라우!"

어디선가 튀어나온 간수들이 트럭에다 대고 소리를 쳤다. 간수들의 명령과 함께 죄수들이 일어나서 트럭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다리를 오므리고 와서 그런지 몸이 뻣뻣한 데다 팔까지 밧줄에 묶여서 트럭에서 내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리자마자 새벽의 찬 공기가 폐 속까지 깊숙이 들어와서는 머리끝을 쭈뼛쭈뼛하게 만들었다.

"좌우로 정렬!"

여기저기서 간수들의 외침이 시끄러운 가운데, 어느덧 죄수들은 4열로 짝을 지어서 섰다. 검정 고무신에 맨발이 대부분인 그들은 추위 때문에 몸을 있는 데로 움츠리고 있었다.

'간나 새끼들 추워 죽갔구만, 뭔 소리가 이리 많아? 날래 좀 들어가자우...'

죄수들의 마음은 온통 안으로 빨리 들어가는 것이었다.

‘부르릉!’

이때 요란한 엔진 소리와 함께 그들을 실어 왔던 트럭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돌아가는 것이었다. 트럭은 할 일을 다 한 듯, 홀연히 새벽 태양 빛 사이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운동장에 남겨진 죄수들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트럭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03지옥의 죄수생활

지옥의 죄수생활

"반가운 신참들이 들어왔구만 기래."

신참 죄수들이 방에 들어서자, 누군가가 비꼬듯이 내뱉었다. 어둡고 탁한 방에는 열댓 명의 선배 죄수들이 얼기설기 축축 늘어지듯이 앉아 있었다.

빡빡 깎은 머리에 핏기 없는 얼굴들, 얼마나 안 빨아 입었는지 꼬질꼬질한 옷과 칙칙한 냄새, 싸늘한 표정의 기분 나쁜 눈길들. 이런 것들이 신참들을 맞이하는 환영 선물이었다.

신참들은 그래도 예의상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인사를 하고는 겸연쩍게 서 있었다.

"앉으라우."

누군가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좁은 방구석에 많은 사람들을 넣었기에 신참들은 벽에 기대지도 못한 채 뻣뻣하게 정자세로 앉아야만 했다.

신참들이 선배들을 자세히 보니 언뜻 봤을 때보다 더 비참한 몰골이었다. 유난히 손발에 굳은살이 많았으며, 개중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참으로 몰골이 말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정말 지옥이 따로 없구나.'

선배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919번!"

고참 하나가 신참의 가슴팍에 붙어있는 번호를 보더니 불렀다.

919번은 얼떨결에 "네"하고 대답했다.

방금 불렀던 고참이 혀를 끌끌 차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석 달짜리구만 기래."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석 달짜리라니요?"

919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묻자, 고참이 대답했다.

"919번, 너의 얼굴이 허여멀건한 걸 보아하니 지금껏 힘든 노동을 한 번도 해 본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긴데 몸 상태가 그리 좋은 것 같지도 않다는 말이지. 기래서 석달 버티면 많이 버틴다는 기야."

"석달은 버틴다구요? 기럼 석달이 지나면…"

"석달이 지나면?"

고참은 고개를 돌려 옆의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거친 숨까지 몰아쉬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보였다. 고참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빈정거리듯 말했다.

"저 꼴 되는 기야."

919번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그 송장 같은 사내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 흐른 후에 어느덧 밥때가 되었다.

'이걸 밥이라고 먹으라는 건가?'

사내는 어제부터 오늘 아침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왔지만, 아침 식사로 나온 밥을 보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콩, 옥수수, 보리를 뭉친 조그만 주먹밥과 두서너 조각의 미역이 둥둥 떠 있는 국 한 그릇. 그는 멍청이 그것들을 쳐다만 보고 있었다.

"식욕이 없소? 기럼 내가 먹갔소."

옆에 있던 놈이 어느새 획 가져가서 자기 입 속에 처넣는 것이었다.

04흥남 공장

흥남 공장

"전원 노동이다!"

오전 8시, 간수들의 외침과 함께 1,500여 명의 죄수들이 전원 운동장 한가운데 모였다. 간수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신참들에게 다가오더니 작업 내용과 주의 사항을 간단히 설명했다.

두 사람씩 밧줄로 묶인 죄수들은 4열로 정렬하고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곧이어 정문이 열리고 1,500여 명의 죄수들이 아침 공기를 가르며 걷기 시작했다. 10리쯤 걸어가니 넓은 평지에 커다란 공장이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공장의 정문에는 커다란 문패가 달려있었고 뭐라고 쓰여 있었다.

'조선 질소 비료 주식회사 흥남 공장'

919번은 멍하니 문패를 바라보면서 공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공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크기였으며, 여기저기서 울리는 굉음은 낯선 이들에게는 처음 느끼는 신기함을 주었다. 그런 신기함도 잠시, 간수들이 여기저기서 외쳐대기 시작했다.

"비료 앞으로 정렬!"

죄수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 하얀 비료 앞에 모두 정렬했다. 곧이어 "작업 시작!"이라는 명령과 함께 각자 위치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먼저 비료 포대 아가리를 벌리고 섰다. 그러면 두 명이 삽을 들고는 비료를 포대에 담았다. 몇 번 퍼 담으면 뒤에 서 있던 다른 한 명이 저울에다 갖다 놓았다. 공장 측의 검량원이 40킬로그램이 넘는 것을 확인하고 옮기라고 지시했다. 남은 6명이 돌아가면서 옮겨다가 묶어서 포장했다. 이렇게 10명이 1조가 되어서 하루에 1,300포대를 나르는 것이었다.

이 1,300포대라는 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 8시부터 5시까지 점심시간 30분을 뺀 8시간 반을 쉬지 않고 3분마다 해야만 하는 작업량이었다. 삽질을 하는 사람이나 나르는 사람이나 죽을 맛이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1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흘린 땀으로 인해 얼굴이나 소매를 걷어 올린 팔목에는 땀과 비료가 엉겨 붙어 있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죄수들에게 물을 소량만 배급했기 때문에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다.

"날래날래 하라우!"

919번이 포대의 매듭을 제대로 묶지 못해서 낑낑대자, 소장이 소리를 쳤다. 도통 이런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이 늦었다. 한 사람이라도 늦으면 전체 조원들이 다 문책을 받기 때문에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다.

"안되갔어. 919번은 삽질을 하라우."

삽질도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생 힘든 일을 해 본 적 없는 그에게 손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삽질을 한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나중에는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05배고픔과 죽음

배고픔과 죽음

919번은 자신이 수용소로 어떻게 다시 돌아왔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마치 혼수상태에서 걸어온 듯했다. 생전 처음 중노동을 하루 종일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수용소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겨울의 짧은 해가 이미 지고 어둑어둑해졌을 때였다.

너무나도 피곤하고 몸이 쑤시고 저렸기에 빨리 자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맥 풀린 눈동자들만 서로 바라보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919번은 무심코 아침부터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고참 죄수를 보게 되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해골 같은 그는 기력이 다 빠진 사람처럼 벽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환자였다. 당장 병원에 데려가지 않으면 정말이지 몇 개월은커녕 며칠도 못 살 것으로 보였다.

'저런 사람도 중노동을 시키나?'

문득 측은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돌렸다.

다들 배고픔으로 배속에서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얼마 후 밥이 나왔다. 배고픔을 채우기에는 너무나도 적은 양의 밥이었지만, 내일을 위해서 먹어야만 했다. 얼마 되지 않는 양이기에 먹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벽 쪽에 기대어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옆으로 쓰러졌다.

"야 이, 간나새끼야! 일어나라우!"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흔들었지만, 그는 일어 나지 않았다. 그는 두 손에 주먹밥을 꼭 쥔 채 숨도 쉬지 않고 누워 있었다.

'결국 저렇게 가는구만…'

919번은 그가 조금 전의 그 해골 같은 고참임을 알아 차렸다.

그렇게 죽어가는 그를 보다가 고개를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방금 쓰러진 사람 곁에 있던 동기들이 죽은 자의 손을 벌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죽은 자가 쥐고 있던 주먹밥을 빼내어서 자기들의 입에다 쳐넣는 것이었다. 또 다른 놈은 입까지 벌려서 손가락을 넣더니 입안의 밥 알갱이들을 파먹는 것이었다.

신참들은 이 광경을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고참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마치 익숙한 일처럼 무표정했다.

고참 하나가 소리쳤다.

"그만들 하고 송장 치우라우."

06젊은 청년

젊은 청년

"너, 내일은 나랑 같은 조 하지 말자우."

919번처럼 일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이 끝난 후에 듣는 일반적인 농담이었다. 농담이긴 하지만 실제로 다음날이면 어제 그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다 그를 피했다.

수용소에 온지도 보름이 지났건만, 그의 손놀림은 여전히 느렸다.

그날도 그는 비료 가마니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가르쳐 드리지요."

같은 조의 건장한 청년 하나가 다가오더니 능숙한 솜씨로 가마니의 매듭을 묶어 주는 것이었다. 919번은 청년이 가르쳐 주는 데로 열심히 따라 했다.

"어때요, 잘 되지요?"

"기러네요, 고맙습네다."

20대 후반 정도로 되어 보이는 이 청년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일을 잘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일 못하는 이런 사람에게 놀리기나 했을텐데 오히려 곁에 와서 도와주다니, 919번은 다시 한번 감사의 표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점심 시간이 되자 그는 밥을 먹고는 청년의 옆에 가서 앉았다.

"정말 고맙습네다."

919번은 어떻게 이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곳에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다.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청년이 미소로 화답했다.

"오신지 얼마 안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사실 저는 인민군 장교였습네다. 기런데 부하 직원이 부정을 저질러서리, 연대 책임으로다가 …"

"아 그렇셨군요. 새로운 환경이라 힘드실 겁니다. 제가 그래도 경험이 더 많으니 이것 저것 알려드리지요."

'이렇게 고마운 분이 있을까?'

919번은 감격의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이리도 친절하게 대해 주다니, 919번은 마치 자신의 절친한 형제라도 만난 것처럼 기쁘기 그지 없었다. 힐끗힐끗 일하는 중간에도 그 청년을 쳐다 보았다. 비록 못 먹어서 마른 몸이었지만, 그 어느 죄수들보다도 풍채가 당당하고 왠지 모를 위용이 있음을 느꼈다.

다음날 아침, 919번은 전날의 청년과 같은 조가 되기 위해서 일찍부터 운동장에 나와서 청년을 찾았다. 쏟아져 나오는 죄수들 중에 어제의 청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머리를 빡빡 깎고 같은 옷을 입어서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두리번, 두리번 찾고 있을 때 멀리서 수인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596번'

어제의 그 청년이었다. 그는 잽싸게 그가 앉은 뒤에 가서 앉았다.

07선생 596번

이날 919번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희망찬 아침을 느끼고 있었다. 596번과 같이 손이 묶여서 가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람이란 정말 간사하구나. 어제 아침까지만 해도 발 옮기는 하나하나가 무겁더니만, 오늘 아침은 이 사람과 함께라면 감옥 생활도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발이 가볍구만 기래.'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공장에 도착했다.

청년은 참으로 일을 열심히 했다. 919번은 조금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다들 억지로 일을 하는데 이 사람은 마치 이 일이 즐거운 사람 같구만'

1시간씩 일을 하고 나면 15분의 휴식 시간이 있었다. 휴식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다들 삽을 내팽개치고 비료 더미 위에 누워버린다. 하지만 596번은 계속 일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주변의 그 무엇도 들리지 않는 듯이 일에만 열중이었다.

919번이 그에게 다가갔다.

"저… 휴식 시간입네다."

919번의 말에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군요, 못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잡고는 앉았다. 919번도 그의 곁에 앉았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919번은 그의 번호를 보더니 그가 596 청년과 같은 방에 있는 죄수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수인번호는 595번이었다.

그는 596번에게 “선생님.”하고 말을 걸었다.

순간, 919번은 놀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이라고?'

나이는 오히려 더 많아 보이는 사람이 젊은 청년 죄수에게 다가와서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919번으로서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잘 왔네. 이분에게 인사를 하게나."

596번의 말에 그는 919번에게 다가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원덕이라고 합니다."

919번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도 인사를 했다.

"아… 네… 저는 박정화라고 합네다."

08죄수들의 선생

'저 청년이 선생님이라고?'

919번 박정화의 머릿속에는 595번 김원덕이 왜 그 청년을 그렇게 불렀는지 계속 궁금했다.

'범상치 않은 청년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저 청년이 그 사람의 학교 스승은 아닐 테고…'

박정화는 도저히 궁금한 나머지 점심을 먹고 난 후 바로 김원덕을 찾았다.

"저를 찾으셨나 보군요."

"네, 좀 궁금한 게 있어서리."

"네, 말씀하세요."

"아침에 596번 청년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하셨는데…"

"그게 궁금하셨군요?"

김원덕은 주위를 한번 살피고는 말을 이어갔다.

"박 선생은 기독교인이시죠?"

"네, 기런데 기걸 어케…"

"선생님은 죄가 있어서 이곳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평양에서 선교 활동을 하시다가 주변의 세력들의 핍박을 받고 이곳까지 오신 겁니다."

"그러면, 목사님이시란 말입네까?"

"우리는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라뇨? 그럼 또 누가…"

"이곳 수용소에서 선생님의 뜻을 따르는 제자들이 꽤 됩니다."

"아, 기래요?"

"박 선생도 선생님의 뜻을 따르는 제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뜻이라뇨?"

"그건 차차 나중에 설명드리기로 하고 이 얘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입니다. 아시겠죠?"

김원덕은 신신당부를 하고는 자리에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박정화가 또다시 물었다.

"긴데, 한가지만요."

"네, 말씀하세요."

"저, 사실은 선생님이라는 분의 존함이 어케 되는지…"

"아니, 여태껏 그분의 존함도 몰랐다는 말입니까?"

"아, 네. 제가 그만 정신이 없어서리…"

"선생의 존함은 문(文)자 용(龍)자 명(明)자입니다."

또박또박 선생의 이름을 밝히고는 김원덕은 등을 돌려 가버렸다.

박정화는 선생의 이름을 다시 한번 입안에서 되뇌여 봤다.

'문 용 명'

09꿈에 본 할아버지

꿈에 본 할아버지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어디선가 한줄기 달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내 그 빛은 박정화의 얼굴에 드리워지더니 갑자기 누군가가 그를 깨웠다.

"정화야! 정화야!"

박정화는 자신을 깨우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달빛을 등에 지고 한 사내가 구부정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할아바지? 할아바지가 여기는 어케…"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시다니! 그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화야, 너 그 선생님이 어떤 분인 줄 알간?"

"그 선생님이라면…"

"그래, 그 젊은 선생님 말이야."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그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라우, 알간? "

"아니…그게 무슨 말씀인지…"

"하여간 너는 그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야만 살 수 있다. 명심해라."

할아버지는 자신의 할 말을 맺고는 달빛 속으로 사라져갔다.

"할아바지! 할아바지!"

박정화는 떠나는 할아버지를 향해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그렇게 소리치다가 그만 잠에서 깼다.

'꿈이었구나.'

아직도 깜깜한 새벽이었다. 그는 꿈속에서 들었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떠 올랐다.

'그 젊은 선생을 따르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개꿈이겠지…' 하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박정화는 지난번 만났던 김원덕의 말도 그렇고, 지난밤 꿈도 그렇고, 평소처럼 문 씨 청년 곁에 다가가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멀찌감치서 배회하고 있었다.

그런 박정화를 멀리서 바라보던 문씨 청년이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난밤에 무슨 꿈 꾸지 않았소?"

문 씨 청년의 갑작스러운 말에 박정화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 사람이 내가 꾼 꿈을 어케 알지?'

그는 속으로 '이 사람이 귀신인가?' 하며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본래 마음이 약했던 그는 갑자기 문씨 청년에게 넙죽 엎드렸다.

"선생님, 제가 아무리 봐도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습네다."

"아니, 왜 이러시요. 일어나세요."

문씨 청년이 그를 일으키려 하자 그는 아예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엎드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 감옥 안에서 제자들이 따르는 것도 그렇고, 어젯밤 저의 할아버지께서 오셔서 선생님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렇고…저를 제자로 삼아주십시오."

"허허허, 제자가 되겠다는 말인가요."

"네 그렇습네다."

"쉽지 않을 텐데요."

그 말에 당황한 박정화는 잠시 선생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이내 엎드리며 말했다.

"열심히 하갔습네다."

10정성을 드리는 선생

"인민군 장교였군 기래."

간수 총대장이 재소자 인적부를 들여다보면서 박정화를 향해 말했다.

"지금 총반장이 다음 주에 형기를 마치고 출소를 하게 되는데, 당신이 앞으로 총반장을 맡아서 하라우."

갑자기 총반장을 맡으라는 말에 어리둥절한 박정화는 곧바로 선생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앞으로 총반장을 하라고 하네요."

"그래? 잘됐네. 한번 열심히 해 보게나."

총반장을 맡은 이후부터 박정화는 고된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재소자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만 점검하면 되었다. 재소자들에 대한 일부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좀더 쉬운 일에 사람을 빼내 올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선생에게 힘든 노동을 피하게 하려고 "선생님, 힘든 노동은 그만하시고, 편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제가 지시할 테니 그렇게 하시라요." 했지만, 그때마다 선생은 한사코 거절했다. 할 수 없이 선생이 힘든 노동을 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성을 드리는 선생

밤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에 누군가 어둠 속에서 홀로 정좌하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

고요하고 적막한 감옥 안에 그의 기도 소리가 작은 속삭임처럼 들린다.

비록 작은 소리지만 그의 가슴 속에서는 큰 함성과도 같은 열망의 울부짖음이었다.

"하늘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하나님, 제가 기필코 당신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옆에서 자던 김원덕이 잠결에 선생의 기도하는 모습을 봤다.

'선생님이 아직도 기도하시는구나…'

피곤함에 지친 그는 이내 눈을 감았다.

아침이 되었다. 김원덕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선생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잠을 주무시지 않는 분이신가?'

매번 이런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도 김원덕은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실 수용소에서 선생의 자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선생이 제일 늦게 자고 제일 먼저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냉수마찰을 했다. 배급받은 적은 양의 물 중 일부를 남겨 두었다가 수건에 적셔서 온몸을 씻는 것이었다. 많은 죄수가 몸에 묻은 비료를 깨끗이 씻지 않아서 온갖 피부병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선생은 이와 같은 생활 습관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렇듯 항상 반듯한 생활 모습은 재소자들이 그를 선생으로 섬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11제자의 불신

"정화."

선생의 부름에 제자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네"

비록 제자보다 어린 29세의 젊은 선생이었지만, 선생의 목소리에는 나이를 뛰어넘는 깊이가 숨어 있었다.

"오늘은 내가 정화에게 중요한 성경의 비밀을 들려주겠노라."

선생의 말씀에 제자는 눈이 번쩍 뜨였다.

"정화는 세례 요한이 어떤 존재인지 아나?"

세례 요한은 예수의 사촌이었으며, 오실 메시아의 가실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갖고 나온 자였다. 그는 광야에서 고난의 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하라.'고 외쳤고, 많은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다.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세례 요한은 최고의 선지자였고,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감복하고 따랐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이 세례 요한을 예수 다음으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칭송한다는 사실을 박정화도 알고 있었다.

"훌륭한 선지자 아니었나요?"

제자의 말에 선생은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더니 계속 말씀을 이어 갔다.

"이제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정화가 알고 있듯이 세례 요한은 정말로 메시아의 가실 길을 미리 와서 예비하는 사명을 갖고 태어났다. 그가 메시아를 알아보고 증거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메시아인 예수를 모시지는 못했다. 그것은 그가 예수가 진정 메시아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가 감옥에서 예수에게 '오실 메시아가 당신입니까?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었던 사실을 보더라도 그는 예수를 메시아로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그가 예수를 섬기고 따랐다면 그는 감옥에서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실패한 선지자인 것이다."

말씀을 듣는 순간 제자는 가슴이 울렁울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의 말씀을, 그것도 존경하면서 따라가고자 했던 젊은 선생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듣기에 거북했다.

"선생님, 기건 좀 이상하네요? 제가 알기로는 세례 요한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마태복음 11장 11절에 보면, 예수께서 세례 요한이 이 땅에서 가장 큰 자였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불신을 놓고 그를 책망하신 말씀인 것이다."

선생의 논리적인 말에 박정화는 아무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믿어 왔던 신념을 바로 바꿀 수는 없었다.

"선생님, 말씀은 잘 들었지만, 저는 그 말씀을 믿기가 어렵습네다."

두 사람 간에 사뭇 진지한 침묵이 한동안 흘렀다. 그러더니 선생은 제자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정화, 자네가 나의 말을 믿지 않으면 안 된다네."

하지만 박정화는 완고한 사람이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12성경의 비밀

성경의 비밀

그날 밤이었다. 박정화는 또다시 할아버지를 만났다.

"정화야, 너 왜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느냐?"

"할아바지, 하지만 그분의 말씀은 저로서는 이해가 …"

"네 이놈! 네가 정녕 죽으려느냐?"

할아버지의 진노에 놀란 박정화는 자다가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는가?"

또다시 선생이 꿈 이야기를 하자, 박정화는 이젠 정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어제는 제가 잘못했습네다.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이제는 무조건 따르갔습네다."

"그래? 그러면 오늘은 또 다른 비밀을 알려주지."

"오늘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이네."

"설마 마리아도 책임을 못했다는 말씀은 아니갔지요?"

"잘 들어보게."

다시금 선생의 말씀이 이어졌다.

"자네도 알다시피 많은 기독교인은 마리아를 성모라고 부르면서 경외하고 있다네. 그것은 마리아가 메시아를 낳은 어머니이며, 목숨을 걸고 예수를 잉태한 업적이 있었기 때문이야."

박정화는 선생의 말을 수긍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아가 장성한 예수를 메시아로서 섬기지는 못했네. 즉 마리아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야."

조용히 듣던 박정화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또다시 그는 마음의 혼란을 느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성스럽게 여겼다. 그런 믿음을 갖고 있던 그에게 마리아가 책임 못했다는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완고한 믿음을 갖고 살아왔던 박정화의 머릿속은 온통 실타래를 풀어놓은 듯, 엉망이 되고 있었다.

'이 말은 정말 믿을 수가 없구만 기래.'

또다시 그의 마음속에서 선생에 대한 의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는 그 말씀을 인정할 수 없습네다."

"또 의심하는군. 그러면 안 되지."

"그래도, 선생님 이번만큼은 도저히…"

선생을 뒤로한 채 돌아온 박정화는 그날 밤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오늘도 꿈에 할아바지가 오셔서 책망하려나? 이번 말씀은 정말 말이 안되는데…'

할아버지의 모습이 또다시 나타났다. 오늘따라 할아버지의 얼굴은 굉장히 험악해 보였다.

"그렇게 이 할아비가 얘기했건만, 네가 정말 선생님의 말씀을 의심하려느냐?"

"할아바지, 그렇지만 성모 마리아를 모독하는 것은…"

"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갑자기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빨갛게 변하더니 두 손으로 박정화의 목을 움켜잡고 짓누르기 시작했다.

"할아바지 와 이러세요. 숨 막혀요…"

발버둥을 쳤지만, 할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손자의 목을 누르는 것이었다.

"이래도 네가 이 할아비의 말을 듣지 않을것이냐?"

"할아바지 들을께요, 들을께요."

눈을 떴을 때 박정화의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목을 만져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13계속되는 불신

계속되는 불신

이틀간의 악몽이 끝나고 박정화는 이제는 정말 선생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을 했다.

"선생님, 어젯밤 꿈에…"

박정화가 꿈 이야기를 하려 하자 선생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었다.

"그래, 이제는 정말 내 말을 믿겠는가?"

"네, 무슨 말씀이라도 의심하지 않갔습다."

"그래? 이번 이야기는 정말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텐데?"

"아닙네다. 믿을 테니 들려 주시라요."

다시금 진지한 말씀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제자는 귀를 긋이 세우고 진지한 표정으로 듣기 시작했다.

"오늘은 예수에 대한 말씀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서 인간의 죄를 사해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예수의 피가 자신들의 죄를 사했다고 생각해서 그가 죽었던 형틀인 십자가를 높이 달고 거기에다가 기도를 한다.

그렇다면 예수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죽으러 왔다는 말인가? 성서에 보면, 예수는 자신을 믿으라고 말했지, 자신을 죽이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가 죽었던 것은 당시의 유대 민족이 예수를 믿지 못해서 죽인 것이지, 예수가 죽으러 온 것은 아니다. 예수의 사후에 제자들이 유대 민족을 향하여 예수를 잡아 죽인 것에 대해서 강하게 비난한 것을 보더라도 예수는 죽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메시아인 자신을 믿게 한 후에, 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유대 민족의 불신으로 인해서 예수님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셨다. 따라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다시금 재림주가 오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는 메시아의 책임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다."

또다시 올 것이 왔다. 박정화의 얼굴이 일그러지다 못해 파랗게 변해 있었다.

그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거이 뭔 소리야? 만왕의 왕이요, 하나님의 독생자, 이세상의 구세주 예수, 그 어떠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모자란 예수님께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내래 세례 요한을 모독하고 마리아를 모독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어도, 예수를 모독하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화가 치민 박정화는 그만 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선생님, 이거이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입네까?"

제자의 이런 태도를 매번 보아 온 선생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네는 아직도 의심이 많군, 돌아가서 기도해 보라."

박정화는 도무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선생의 모든 말씀이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것을 받아들이란 말인가? 박정화의 머릿속은 또다시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한편, 오늘 밤에도 할아버지가 오셔서 무슨 소리를 하실까 하는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할아바지께서 나를 위협한다 해도 저런 말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늘은 나도 사생결단을 내려야겠다.'

14돌아온 제자

"할아바지, 오늘은 얼굴이 와 기러세요?"

박정화는 할아버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매우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핏기도 없고 눈동자는 힘이 빠진 듯이 풀려 있었다.

"정화야, 내가 너를 이제는 포기해야겠구나."

할아버지의 맥빠진 사람처럼 힘없는 말에 박정화는 더욱 더 놀라서 물었다.

"네? 기거이 무슨 말씀이십네까?"

"내가 너에게 그토록 일렀건만, 너는 그놈의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구나."

"그래도 예수를 모독하는 말씀을 듣고 어케…"

"정화야, 너는 그분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처음에는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습네다. 기런데 지금은 잘 모르습네다."

"잘 들어라. 그분은 하늘이 보내신 분이다."

"하늘이 보내신 분이라고요?"

"그렇다. 너는 그분이 무슨 말씀을 하든지 절대적으로 따라야만 한다. 기래야만 너는 이곳에서 살아 나갈 수 있는 기야. 기런데 기렇게 완고하니 이 할아비가 이제는 더 이상 힘이 없구나."

초췌한 노인네는 천천히 등을 돌리고는 가버렸다.

"할아바지! 할아바지!"

그는 할아버지를 향해 목이 터지라 불렀다.

박정화는 지난밤 꿈 때문에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초췌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 그 선생을 배신했다가는 내가 여기서 죽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정말 하늘이 보내신 분이라면 그분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나는 살 수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세 번씩이나 이렇게 나에게 강하게 말씀하신 것은 나를 살리시기 위함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의 머릿속이 한결 맑아졌다. 그는 이제는 정말 선생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 기도는 해 봤나?"

선생은 웃으면서 겸연쩍은 표정인 제자에게 물었다.

"사실은 어제도 할아바지께서 오셔서…"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자네는 자네 생각이 중요하지 않나?"

"물론 그렇습네다만, 할아바지 말씀도 그렇고 또 제 생각에도 그렇고…앞으로는 절대적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믿갔습네다."

"음…그래? 앞으로는 더욱 더 충격적인 말씀을 해 줘야겠군."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껄껄껄 웃었다. 선생의 말에 제자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15선생을 찾은 여인

선생을 찾은 여인

1950년 어느 봄날이었다. 흰 저고리의 한 중년 여인이 흥남 형무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는 보따리를, 또 한 손에는 손수건을 꼭 지고는 쉼 없이 걸었다. 그녀는 형무소에 도착하자 이내 재소자 면회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측은한 눈길로 마치 자기 아들처럼 젊은 선생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선생님, 몸은 어떠세요?"

울먹이는 여인의 말에 젊은 청년이 조용하게 대답했다.

"울지 마요. 나는 괜찮으니."

비록 죄수복을 입은 처량한 모습이었지만 선생의 눈빛은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교회 식구들에게 마음을 단단히 갖고 신앙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하세요. 조금 있으면 섭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일어날 것이요."

선생의 말에 여인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섭리적으로 중요한 일이라고요?"

"그래요, 죽지만 말고 신앙을 지키라고 하세요. 조금 있으면 내가 여기서 나가게 될 것이요."

"네? 선생님의 형기가 아직도 3년이나 남았는데…"

"내 말 잘 들어요. 때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서 내 보내실 겁니다. 그러니, 내가 한 말을 잘 지키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대답을 하고 보따리를 선생에게 건넸다.

"이거 떡과 미숫가루입니다. 다른 사람들 주지 마시고, 숨겨두었다가 드세요."

선생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는 보따리를 들고는 일어났다. 그녀는 뒤돌아가는 선생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그의 바지를 보게 되었다. 너무나도 낡고 심지어는 여기저기 구멍이 난 바지를 보자 눈물이 솟구쳤다. 그녀는 쏟아지는 울음을 손수건으로 틀어막고는 선생의 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선생은 감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오늘은 잔치를 벌이자!"

20여 명의 감방 동기들이 달려들어서 보따리의 음식을 나눠 먹었다.

"선생님은 안 드십네까?"

"나는 됐다. 자네들이나 많이 먹어라."

16전쟁의 시작

전쟁의 시작

5월이 되자 수용소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곧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이었다.

"소련 쪽으로 비료를 운반해 간 배가 돌아올 때는 곡사포를 잔뜩 싣고 온다는구만 기래."

간수 하나가 총반장에게 귓속말로 비밀 정보를 전달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전쟁이 시작될 것임을 느꼈다.

6월이 되자 분위기는 더욱더 심상치 않았고, 수용소 내에서도 감시가 철저해지기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이었다.

"선생님. 전쟁이 시작됐답니다."

전쟁 소식을 전해 들은 총반장은 선생에게 달려가서 소식을 전했다. 이날 새벽, 총성이 울리면서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래, 올 것이 왔구나."

선생은 이미 이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초조해진 제자들은 선생을 통해 미래를 알고 싶은 듯, 가까이 다가와 물어보았다.

"선생님, 전쟁이 어케 되갔습네까?"

"침착해라. 죽고 사는 것은 다 하늘의 뜻이다. 하던 일이나 마저 해라."

선생의 말에 제자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전쟁의 양상은 남한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3일 만에 남한의 수도 서울이 북한의 인민군에 의해 함락되었다. 군사력이 열세였던 남한의 국방군은 수도의 함락과 함께 남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어느새 남과 북은 한달 이상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0년 8월 1일.

낮 12시였다. 갑자기 요란한 비상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간수 하나가 공장을 가로질러 달려오고 있었다.

"공습이다!"

그 소리가 떨어지기 무섭게 '쾅'하며 폭탄이 터졌다. 사람들이 떼 지어 일하던 한 복판에 폭탄이 터지면서 현장은 바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었다. 수백 명의 시체가 나뒹굴었고 여기저기서 신음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또다시 비행기가 '웽'하고 지나가면서 폭탄을 투하했다. 계속해서 여기 저기에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간 시체들이 뒹굴었다.

이날 수십 대의 UN 폭격기는 장장 4시간 동안 비료 공장에 폭탄을 퍼부었고 수천명이 죽어 나갔다.

"선생님, 괜찮으십네까?"

가까스로 수용소로 피해 온 제자들이 선생에게 달려왔다. 하지만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소처럼 의연했다. 그러면서 제자들에게 전과 같은 말을 했다.

"침착해라. 죽고 사는 것은 다 하늘의 뜻이다."

17죄수들의 죽음

죄수들의 죽음

"대장님, 이러다가 수용소까지 공격하면 어케 합네까?"

공습이 있던 날, 총대장과 몇몇 관리자들이 사무실에 모여 대책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용소는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일단 안심하라우."

"기걸 어케 아십네까?"

"제네바 협약인지 뭔지가 있어서리, 수용소 같은 시설에는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만."

"기래요? 기건 기렇고 앞으로 어케 해야 합네까? 공장이 저렇게 되어서…"

"일단 상황을 보자우, 기렇다고 손 놓을 수는 없지 않갔어?"

다음날부터 공장 복구 작업이 벌어졌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시체들을 치우는 일도 큰 일이었다. 공장 직원이 4000여 명이 죽었고, 수용소 죄수들이 70여 명이 죽어 있었다.

"선생님, 저 먼저 떠나게 되었습네다."

공습 다음날 인 8월 2일, 총반장 박정화는 형기를 마치고 나가게 되었다.

"그래, 나가거든 평양에 가서 교회 식구들을 만나게나. 그리고 내가 잘 있다고 전해주게."

"네, 알갔습네다."

제자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뒤를 보며 선생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기를 몇 번 하더니 멀리 사라져 갔다.

"앞으로 얼마 있지 않아 우리도 저렇게 나가게 될 것이다."

선생의 말에 제자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 봤다.

8월 중순이 되자 북한은 부산을 제외한 전국을 점령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서 북한의 완전한 승리가 오는 듯 했다. 9월이 되자 북한은 승리의 축배를 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9월 15일 UN의 인천상륙 작전이 시작되었다. 한반도의 남단까지 총공격에 나섰던 북한에게 인천상륙 작전은 그야 말로 허를 찌르는 것이었다.

"대장님, 큰일났습네다. UN군이 코앞에까지 올라 왔다 합네다."

10월이 되자 UN군이 수용소 근처까지 진군해 왔다. 수용소 간부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총대장에게 달려와 저마다 한마디씩 소리쳤다.

"대장님, 이러다가 다 죽갔시요. 여기를 버리고 날래 도망가자요."

"기래요. 나래 도망가야 합네다."

총대장이 그들을 향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기래, 너네들 말대로 도망간다고하자, 긴데 죄수들은 어케할 거이가?"

"기야, 내보내거나 놓고 가면 되지 않갔습네까?"

"기게 기렇게 쉬운 일인 줄 알아?"

간부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만일에 우리가 도망가다가 저 새끼들이 우리를 보면 기냥 놔두갔어?"

듣고 보니 그렇다. 그동안 모진 학대를 받아 왔던 저들이 밖에서 우연히라도 간수들을 보게 되면 보복을 할 터이니 말이다.

"기럼, 어케 해야 합네까?"

"어케하긴 뭘 어케해. 다 죽이고 가야지."

다음날, 호명된 수백의 죄수들이 밧줄로 서로가 묶여서 어디론가로 끌려갔다.

간수들은 총으로 무장을 하고는 그들을 산속 깊은 곳으로 이끌었다.

1시간 정도 올라왔을 때였다.

한 간수가 멈춰서더니 땅바닥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다!"

간수들은 죄수들에게 삽으로 땅을 파도록 명령했다. 영문도 모르고 죄수들은 땅을 파기 시작했다.

두 시간 가량 땅을 파고들어갔을 때였다.

"탕 탕 탕"

땅을 파던 죄수들을 향해 총알이 빗발쳤다. 총에 맞은 죄수들은 픽픽 쓰러졌다. 그들이 파놓은 구덩이는 자기들의 무덤이 되었다.

18삶과 죽음

"어제 작업에 끌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구만 기래."

삽시간에 수용소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거, 다 죽인 거 아니야?"

죄수들의 눈빛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간수들이 산속으로 작업을 보낼 죄수들의 번호를 호명했다.

"선생님, 저까지 호명되었습니다."

선생의 바로 전 번호인 595번, 김원덕까지 호명되었다.

김원덕은 왠지 이것이 마지막 인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때와는 다르게 좀 더 정중하게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원덕."

선생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선생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눈빛으로 한동안 제자를 쳐다봤다.

"다녀와라."

"네"

제자는 대답을 마치고 돌아서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어제와 같은 장소에 죄수들이 집결했다. 깊이 파인 커다란 구덩이 속에 어제 올라왔던 죄수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구덩이를 흙으로 덮어라!"

간수의 호령과 함께 죄수들은 흙을 퍼서 시체들 위에 덮었다.

그들은 자신들도 그 자리에서 죽어갈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는지 그저 무기력하게 흙을 퍼 나를 뿐이었다.

김원덕은 자신의 삶이 이제 몇 분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기도했다. 드디어 시체 위에 흙이 덮이자, 예외 없이 인민군 소총이 죄수들을 향해 갈겨지기 시작했다.

시체에 덮였던 흙 위로 죄수들의 주검들이 다시금 쌓여갔다.

한참을 갈기고 난 간수들은 총을 어깨에 메고는 할 일을 했다는 듯이 터벅터벅 산에서 내려갔다.

간수들이 다 내려가고 나서 얼마 후, 까마귀들이 '깍깍' 소리를 내며 구덩이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였다.

죽은 시체처럼 누워있던 김원덕이 갑자기 눈을 떴다.

'살았구나!'

김원덕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온몸이 밧줄로 묶인 데다 다른 시체들이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밧줄을 끊어야 해!'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래, 바로 저거야.'

그는 안경을 쓴 시체를 발견했다. 손을 뻗어서 시체에서 안경을 뺀 다음 돌을 쥐어서 안경알을 박살 냈다. 깨진 안경알을 조심스럽게 쥐고는 자신의 팔을 옭아매고 있는 밧줄을 살살 끊기 시작했다. 30분쯤 버둥버둥하니까 밧줄이 다 풀렸다.

그는 일어나서 자기 몸을 살펴봤다. 아무 곳도 다친 곳이 없었다. 300여 명의 죄수들이 죽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살아난 것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하늘에 감사하며 산을 내려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19탈출

탈출

그날 밤, 선생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지시를 내렸다.

"이제 우리가 여기서 떠날 때가 되었다. 새벽이 되면 여기서 탈출하는 것이다."

"선생님, 문이 저렇게 잠겨 있는데 어케 탈출합네까?"

"일단 내 말을 명심하고 기다려라."

제자들은 선생의 분부에 따를 것을 다짐하고는 각자의 자리에서 탈출을 위한 준비를 했다.

드디어 새벽이 되었다.

'쾅'

어디선가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공습이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공습을 알리는 간수들의 외침이 들렸다. 죄수들이 혼비백산하여 서로 도망치려고 아우성을 쳤다.

선생의 제자들도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

"침착해라. 내 곁에서 바짝 붙어야만 한다. 절대 내 주변에서 멀리 떨어지면 안된다."

그렇게 선생은 제자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앞장을 섰다.

수천의 죄수들이 둑에 물이 빠지듯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정문을 향해 달렸다.

선생의 제자들도 그리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자 선생이 외쳤다.

"그리로 가지 말고 나를 따라와라!"

선생은 사람들과는 다른 반대편으로 달렸다. 선생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선생의 뒤를 따라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몇몇은 그냥 정문을 향해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버렸다.

그때였다. UN 폭격기 한 대가 상공을 지나가면서 운동장 가운데 폭탄을 떨어뜨렸다.

'쾅'

쏟아져 나오는 무리 한 가운데에 폭탄이 떨어졌다. 수백의 시체가 한순간에 나뒹굴었다. 살아남은 무리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하며 울부짖었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도 선생은 침착하게 앞장을 서며 달렸다. 그런 선생을 따라 제자들도 달렸다. 선생의 무리는 수용소 뒤쪽으로 달려갔다. 뒤쪽의 담장이 이미 폭탄에 맞고 무너져 내려 있었다. 그들은 무너져 내린 담장을 넘어서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폭탄 터지는 소리가 이제는 작게 들려왔다.

어느새 저 멀리 산 너머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 * *